태국의 영향력 있는 100명의 태국인들 · 사회
100위 · 사만 꾼안 — 타인의 생명을 위해 다시 동굴로 향한 사람
태국의 영향력 있는 100명의 태국인들 | 탐루앙 구조에 자원한 전직 네이비실의 삶과 희생

어린 시절과 해군 특수부대
사만 꾼안(สมาน กุนัน, Saman Kunan)은 1980년 12월 23일 짜뚜라팍피만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위차이와 어머니 삼란 꾼안의 아들입니다. 짜뚜라팍피만은 태국 동북부 이산 지방의 로이엣 주에 속한 곳으로, 그는 고향 로이엣과 깊은 인연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이산은 농업이 중요한 지역이고, 많은 젊은이가 군대나 방콕 취업으로 길을 찾는 곳입니다.
그는 해군 학교를 거쳐 수중폭파공격대, 즉 흔히 태국 네이비실로 불리는 부대에 들어갔습니다. 네이비실은 태국 군 안에서도 혹독한 훈련으로 알려진 부대로, 잠수와 수중 작전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때 익힌 잠수 기술이 훗날 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전역 후의 삶: 공항 보안요원이자 철인 운동선수
그는 2006년 부대를 떠나 태국공항공사(AoT)에 들어가 방콕 수완나품 공항의 보안요원으로 일했습니다. 군복은 벗었지만 몸과 마음은 여전히 부대에 있었습니다. 동료들의 추모글에 따르면 그는 전역 후에도 옛 동료들과 계속 연락하며 부대 활동에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직장 밖에서는 지구력 운동을 즐기는 운동선수였습니다. 경험 많은 철인3종 선수였고, 태국의 자전거팀 Nich-100Plus의 일원이었으며, 카약과 하이킹도 즐겼습니다. 해외 매체들은 그가 트레일 러너이자 사이클리스트로도 활동했다고 전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내 왈리폰 꾼안과 결혼한 가장이었습니다.
2018년 탐루앙 동굴 사고
2018년 6월 23일, 치앙라이 매사이의 유소년 축구팀 '무빠(와일드 보어)' 소속 아이 12명과 코치 1명이 탐루앙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작스러운 폭우로 동굴이 물에 잠기며 갇혔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직 네이비실 단체 대화방에는 치앙라이에서 만나자는 메시지가 돌았습니다. 사만도 그 부름에 응했습니다. 그는 구조에 합류하기로 결심한 전직 네이비실 출신 공항공사 직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공항에서 남긴 영상에는 해군 의료진, 그리고 잠수 장비를 기증한 다이버들과 함께 있다는 설명이 담겼습니다. 누구의 명령도 아닌 자원봉사였습니다.
7월 2일 영국 다이버들이 아이들을 찾아내면서 생존이 확인됐지만, 진짜 어려움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동굴 입구에서 아이들이 있는 곳까지는 물에 잠긴 좁고 날카로운 통로가 수 킬로미터 이어졌고, 동굴 안 산소 농도마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구조를 위해서는 탈출 경로 곳곳에 공기통을 미리 깔아 두는 작업이 필수였습니다. 사만이 맡은 임무도 공기통을 배치해 구조대의 이동 경로를 지원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잠수
7월 5일 저녁, 사만은 잠수 파트너와 함께 계획된 탈출 경로를 따라 공기통을 배치하러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정작 자신의 공기가 바닥났고, 파트너가 그를 물 밖으로 끌어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7월 6일 새벽 1시 무렵 숨졌습니다.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만 37세였으며, 당시 여러 보도에는 38세로 소개됐습니다.
그는 2018년 구조 작전 도중 현장에서 숨진 구조대원이었습니다. 다만 이 작전과 관련한 사망자가 그 한 명뿐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태국 해군 구조대원 베이루트 팍바라는 구조 중 얻은 감염으로 치료를 받다가 2019년 12월 사망했습니다.
사만의 죽음은 구조대 전체에 큰 충격이었지만, 네이비실 지휘관 아빠꼰 유꽁깨우 소장은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동료들은 추모글을 그가 바랐던 대로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약속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7월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에 걸친 작전 끝에 아이 12명과 코치 전원이 살아서 나왔습니다. 사만이 공기통을 배치하며 지원했던 경로는 이들을 구조하는 데 쓰였습니다.
국가적 애도와 장례
그의 시신은 즉시 예우를 받았습니다. 치앙라이 공항에서 군인과 경찰이 경례하는 가운데 관이 해군 수송기에 실렸고, 해군 시설에서의 장례 절차를 거쳐 고향 로이엣으로 옮겨졌습니다. 국왕은 전역한 민간인 신분이었던 그에게 사후 특진과 왕실의 장례 지원을 내렸습니다.
사만은 해군 소령으로 사후 특진했습니다. 일등중사로 전역했던 그가 장교 계급을 받은 것입니다. 장례에는 왕실 불꽃의 특전도 내려졌습니다. 이는 왕실 사절이 장례의 불씨를 가져오는 의식입니다. 화장은 7월 14일 로이엣 주의 왓 반농쿠에서 왕실 후원으로 거행됐습니다. 고향 사람들도 마음을 보탰고,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장례 기간 동안 아내 왈리폰이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은 태국 전역을 울렸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이제 아침에 일어나 누구에게 입을 맞춰야 하느냐고 썼고, 둘이 같은 숨을 나눠 쉬기로 약속했었다는 마음도 전했습니다. 공기를 전하러 갔다가 숨을 잃은 남편에게 바친 이 말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 이후: 사만이 남긴 것
사만의 이야기는 장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조된 아이들과 코치는 그에게 감사하고 공덕을 바치기 위해 단기 출가에 참여했습니다. 다만 모든 아이가 출가한 것은 아니며, 기독교 신자인 소년 한 명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태국 불교 문화에서 출가는 고인에게 공덕을 바치는 중요한 방식입니다.
예술가들도 추모에 나섰습니다. 백색사원(왓롱쿤)으로 유명한 국가예술가 찰름차이 꼬싯피팟은 사만을 기리는 동상 제작을 추진했습니다. 이 청동상은 탐루앙 동굴 앞에 세워졌고, 지금도 방문객들이 그를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국경 너머에서도 추모가 이어져 인도에서는 그의 용기를 기리는 모래 조각이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스포츠계 인사와 시민들도 그의 희생을 기억했습니다.
남겨진 아내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공항공사는 유족 지원을 발표했고, 같은 해 8월에는 더 상징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왈리폰이 남편이 구조에 나서기 위해 휴가를 냈던 수완나품 공항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은 구조에 자원했던 공항공사 직원들을 표창하는 행사와 함께 전해졌습니다.
2019년에는 태국공항공사가 사만의 이름을 딴 건물을 세워 그를 기렸습니다. 이후 탐루앙 사건은 다큐멘터리와 넷플릭스 시리즈,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13 Lives」 등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고, 그때마다 사만의 희생은 중요한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탐루앙 동굴 일대는 추모 공간이자 방문 명소가 됐고, 동굴 앞 사만의 동상은 그 상징이 됐습니다.
그가 태국 사회에 남긴 의미
사만 꾼안이 이 기획의 100위에 오른 이유는 권력이나 재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이산 출신 공항 보안요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과 죽음은 정치적 분열을 겪던 태국 사회가 함께 슬퍼하고, 한 사람의 용기를 함께 기억한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삶에서 읽을 수 있는 영향력은 지위보다 행동에서 나옵니다. 구조에 나설 의무가 없었던 사람이 자신의 기술을 필요한 곳에 내놓았습니다. 사만의 이야기가 남기는 질문은 그래서 단순합니다. 누군가의 생명이 걸린 순간,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
참고 자료
- Wikipedia – Saman Kunan
- TVNZ – Thai Navy SEALs pay tribute
- WSB-TV – Who was the former Thai Navy SEAL
- Triathlon Magazine – Triathlete dead after heroic dive
- MY HERO – Saman Kunan
- The Week – Wild Boars boys might become monks
- Khaosod English – Wife of ‘Sgt. Sam’ mourns
- Khaosod English – Cave hero widow takes same airport job
- Al Jazeera – Thailand cave rescuer dies after year-long blood infection (2019.12.28)
- Wikimedia Commons – Tham Luang monument (사진 출처)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인물 소개입니다. 해석과 평가는 필자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