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홍수와 디젤, 두 개의 파도 앞에 선 태국 중소 제조업
국제회의장의 80억 달러 계획과 공장 바닥의 물 높이 사이
이번 주 방콕에서는 IMF·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리고 있다. 태국 정부는 이 자리에서 짜오프라야강 유역의 장기 물 관리에 약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은행은 태국이 홍수로 해마다 약 6억 달러를 잃는다고 본다. 회의장의 숫자는 크고, 계획은 길다.
같은 시각 빠툼타니의 공장 주인들이 보는 숫자는 다르다. 공장 문 앞까지 차오른 물의 높이, 그리고 매주 오르는 운송비다.
재난예방완화국 집계로 10월 11일 기준 홍수 피해를 입은 사람은 314만 명이다. 피해 가구가 가장 많은 곳은 빠툼타니(약 24만 9천 가구)와 사뭇쁘라깐(약 22만 5천 가구)이다. 방콕 바로 옆, 중소 공장이 가장 촘촘하게 모여 있는 지역이다. 산업부는 13일까지 59개 주에서 4,635개 사업장이 약 182억 바트의 피해를 입었다고 집계했고, 태국산업연맹(FTI)은 중소기업에 대한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물이 빠져도 두 번째 파도가 기다린다. 디젤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이어지면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106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0월 보고서에서 세계적인 디젤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료를 실어 오는 트럭도, 모던트레이드 물류센터로 가는 배송차도, 수출 컨테이너도 모두 디젤로 움직인다. 홍수로 멈춘 생산을 다시 돌리는 순간, 오른 운송비 청구서가 함께 도착한다.
대기업에게는 공업단지의 제방과 보험, 여러 곳에 흩어진 공장이 있다. 중소기업에게는 대개 공장 하나, 창고 하나가 전부다. 물이 한 번 들어오면 원료와 완제품, 기계가 한꺼번에 멈추고, 거래처에 약속한 납기도 함께 무너진다. 같은 홍수라도 중소기업이 받는 충격의 크기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중소 제조업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지만 분명하다.
첫째, 재고를 한곳에 두지 말아야 한다. 원료와 완제품을 나눠 보관하고, 바닥에서 띄워 두는 것만으로도 피해 규모가 달라진다.
둘째, 운송비 이야기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 디젤 부족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오른 물류비를 거래처와 어떻게 나눌지 미리 대화해 두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의 내년은 다를 것이다.
셋째, 정부 지원을 챙겨야 한다. 피해 신고와 저리 대출은 물론이고, 근로자 복지기금 적립금 징수 시작이 2027년 1월 1일로 미뤄진 것처럼 현금 흐름을 덜어 주는 조치가 하나씩 나오고 있다.
정부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 80억 달러짜리 물 관리 계획은 10년을 내다보는 일이다. 하지만 물에 잠겼던 공장에 필요한 것은 다음 달 급여를 낼 수 있는 저리 자금과, 다시 기계를 돌릴 때 감당할 수 있는 물류비다. 큰 계획과 작은 공장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정책이 함께 나와야 한다.
산업부는 9월 산업심리지수가 90.7로 올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공장 바닥에서 그 숫자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 가을, 태국 경제는 지수보다 물 높이와 운송비 청구서로 읽어야 정확하다.
필자의 견해를 담은 오피니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