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전문가 칼럼 · 비즈니스 관습
쿤, 츠렌, 피와 넝: 태국 직장에서 사람을 부르는 법
성 대신 이름과 별명으로 부르는 태국 사무실, 호칭에 담긴 거리와 관계를 읽는다

태국 거래처와 처음 명함을 주고받으면 한국인은 대개 성을 먼저 찾는다. 그런데 명함에 적힌 성은 영어로 옮겨도 열 글자가 넘을 만큼 길고, 막상 상대는 그 성으로 불리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회의실에서 서로를 부르는 이름은 명함에 없는 짧은 단어인 경우가 많다. 태국 직장의 호칭에는 몇 겹의 층이 있고, 이것을 알면 사람 사이의 거리가 훨씬 잘 보인다.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는 나라
태국에 성씨가 법으로 정해진 것은 1913년 성씨법 이후다. 그 전까지 대부분은 이름 하나로 살았다. 지금도 시행 중인 인명법은 이미 등록된 성을 다른 가문이 다시 쓰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새로 만든 성은 점점 길고 복잡해졌고, 성이 같으면 대개 친척이라고 보아도 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태국 사람은 성(นามสกุล, 남사꾼)으로 사람을 부르지 않는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쓰는 존칭 쿤(คุณ) 뒤에 이름을 붙인다. 한국식으로 "김 사장님"이라 부를 자리에서 태국에서는 "쿤 솜차이"가 된다. 편지나 이메일도 "Dear Khun" 뒤에 이름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사나 교사처럼 직함이 분명하면 머(หมอ, 의사), 크루(ครู, 교사) 같은 말이 쿤을 대신한다.
명함에 없는 이름, 츠렌
한 겹 더 들어가면 별명, 츠렌(ชื่อเล่น)이 있다. 태국 사람 대부분은 태어날 때 가족에게서 한두 음절짜리 별명을 받아 평생 쓴다. 공식 이름은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긴 단어가 많아 일상에서 부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나쁜 기운이 아이를 데려가지 않도록 무(หมู, 돼지)나 꼽(กบ, 개구리)처럼 일부러 볼품없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요즘은 뱅크, 보너스, 민트, 케이크처럼 영어 단어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
별명은 사적인 애칭에 머물지 않는다. 동료끼리는 물론 상사도 부하 직원을 별명으로 부르고, 사원증에 별명을 함께 적는 회사도 있다. 몇 년을 함께 일한 동료의 공식 이름을 모르는 일도 드물지 않다. 다만 계약서와 관공서 서류, 학위증에는 반드시 공식 이름이 들어간다. 이름이 쓰이는 자리가 처음부터 나뉘어 있는 셈이다.
형과 동생으로 이어지는 사무실
세 번째 층은 피(พี่)와 넝(น้อง)이다. 본래 손위 형제와 손아래 형제를 뜻하지만 학교와 직장, 친구 사이로 넓게 쓰인다. 후배는 선배를 "피 + 별명"으로 부르고, 선배는 후배를 "넝"이라 부르며 챙긴다. 나이와 경력, 직위가 함께 작용하는 위계이면서 동시에 가족 같은 친밀감을 담는다. 인사할 때 와이(ไหว้)를 먼저 하는 쪽이 아랫사람이라는 질서도 같은 맥락에 있다.
태국 사람에게 호칭은 상대를 어디에 두느냐를 말해 주는 신호다. 쿤은 정중하지만 거리가 있고, 별명은 마음을 열었다는 뜻이며, 피와 넝은 서로를 돌보는 관계에 들어왔다는 표시다. 위계를 지키면서도 그 위계를 따뜻하게 감싸려는 태도가 호칭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한국인이 알아 두면 좋은 점
첫째, 처음 만난 자리에서는 "쿤 + 이름"이 가장 안전하다. 성으로 부르거나 성과 이름을 거꾸로 적는 실수는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명함의 어느 쪽이 이름인지 헷갈리면 물어보는 편이 낫다.
둘째, 별명은 상대가 먼저 알려 줄 때 쓴다. 상대가 별명으로 자기소개를 했다면 그 이름을 기억해 불러 주는 것이 친해지는 지름길이다. 반대로 외국인이 임의로 별명을 지어 부르는 것은 피해야 한다.
셋째, 피와 넝은 서두르지 않는다. 현지 직원이 관리자를 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면 신뢰가 쌓였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된다. 다만 관리자가 첫날부터 그 위계 안으로 성급하게 들어가기보다 쿤으로 시작해 상대가 정하는 속도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명함 속 긴 이름과 사무실에서 오가는 짧은 별명, 그 사이에 태국 사람들이 관계를 쌓아 가는 길이 있다. 누군가 나를 별명으로, 혹은 피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날은 계약서에 서명하는 날만큼이나 의미 있는 날이다.
참고 자료
- Thai name - Wikipedia
- Understanding Thai Names: Law and Culture - Library of Congress (In Custodia Legis)
- Thai Culture: Naming - The Cultural Atlas
- Beyond the ID card: Inside Thailand's unique culture of nicknames - The Business Standard
- Respect and Hierarchy: Navigating Thai Workplace Relationships - AustCham Thailand
- Thai Names, Nicknames and Forms of Address - Thai Holiday Guide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