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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80위, 공장 책상 위 서류 한 장의 무게

규제 집행의 예측 가능성은 중소기업에게 가장 현실적인 경쟁력이다

공장 사무실의 계약 서류와 저울로 규정 집행의 일관성을 표현한 실사풍 AI 이미지
Google Gemini로 생성한 실사풍 AI 참고 이미지입니다. 실제 인물·사업장이나 보도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아닙니다. · M31 NEWS · Google Gemini AI 제작

월드저스티스프로젝트(WJP)가 10월 24일 내놓은 '법치 지수 2026'에서 태국은 143개국 가운데 80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77위에서 세 계단 내려왔고, 점수는 1점 만점에 0.50으로 제자리다. 동아시아·태평양 15개국 중에서는 10위다. 여덟 개 항목 가운데 세계 평균을 넘은 것은 '질서와 치안' 하나뿐이었다.

공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눈길이 가는 숫자는 순위보다 '규제 집행' 항목이다. 태국은 0.44로 세계 평균 0.54에 한참 못 미치고, 5년 사이 4% 가까이 뒷걸음질했다. '부패 부재' 점수도 0.44로 평균 0.51보다 낮다. 민사 사법의 비용과 접근성은 개선이 없었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이 숫자를 정치 이야기로만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규제 집행 점수는 결국 "같은 규정이 누구에게나,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는가"를 묻는다. 중소 제조업체에 법치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인허가 서류가 반려되는 이유를 예측할 수 있는지, 담당자가 바뀌어도 기준이 그대로인지, 거래처가 대금을 미룰 때 합리적인 비용과 시간으로 다툴 수 있는지의 문제다. 기준이 흔들리면 큰 회사는 전담 인력과 자문사로 버티지만, 작은 회사는 시간과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예측 가능성이 낮은 시장에서는 정직하게 일하는 쪽이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치르기 쉽다. 화장품과 생활용품처럼 등록·표시 규정이 촘촘한 업종일수록 이 차이는 제품 출시 일정과 재고 부담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 모든 행정 절차를 문서로 남기는 습관이다. 신청서 제출일, 접수 번호, 담당 부서와 회신 내용을 한곳에 기록해 두면 기준이 바뀌거나 지연이 생겼을 때 근거를 들고 질문할 수 있다. 기록은 분쟁에서 가장 값싼 보험이다.

둘째, 계약서를 다시 읽어 보는 일이다. 결제 조건, 지연 이자, 분쟁 해결 방식과 관할을 분명히 적어 두어야 한다. 민사 소송이 비싸고 느린 환경이라면 중재나 조정 조항을 미리 넣어 두는 것이 현실적인 방어책이다.

셋째, 혼자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산업협회나 상공회의소를 통해 같은 문제를 겪는 업체들의 사례를 모으면, 개별 민원으로는 움직이지 않던 관행도 공식 의견으로 바뀔 수 있다. 규정 해석이 애매할 때는 서면 질의로 공식 답변을 받아 두는 편이 낫다.

정부와 업계에도 바라는 점이 있다. 태국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와 OECD 가입을 국가 과제로 내걸고 있다. 투자자는 세제 혜택보다 규칙이 예측 가능한지를 먼저 본다. 인허가 처리 기준과 기한을 공개하고, 진행 상황을 온라인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하며, 지연되면 이유를 서면으로 알리는 것만으로도 체감은 크게 달라진다. 소액 상거래 분쟁을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하는 창구를 넓히는 일도 시급하다. 업계 역시 편법으로 시간을 사는 관행에서 먼저 손을 떼야 한다. 기준을 지키는 기업이 손해 보지 않는 구조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

법치 지수는 멀리 있는 국제 순위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장 사무실 책상 위 서류 한 장의 무게다. 규칙이 단단한 나라에서 작은 공장도 멀리 내다보고 투자할 수 있다. 신뢰는 법전이 아니라 집행의 일관성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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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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