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전문가 칼럼 · 문화
끄렝짜이(เกรงใจ), 태국 사람들이 '네'라고 말하는 이유
상대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 그리고 태국 직장에서 그것을 읽는 법

태국 사람과 식사를 하다 보면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계산하겠다는 상대에게 몇 번이고 손사래를 치고, 도와주겠다는 제안에는 "괜찮다"며 먼저 물러선다. 회의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던 직원이 나중에야 사실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이 모든 장면을 하나로 꿰는 말이 끄렝짜이(เกรงใจ)다.
끄렝(เกรง)은 '두려워하다, 어려워하다'라는 뜻이고 짜이(ใจ)는 '마음'이다. 글자 그대로 옮기면 '마음을 어려워하다'쯤 되지만, 실제 뜻은 무서움보다 조심스러움에 가깝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거나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 그리고 나보다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어려워하며 예를 갖추는 태도가 함께 담겨 있다. 영어로 옮기기 어려운 태국어 단어를 꼽을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상에서 끄렝짜이는 아주 작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으려고 발소리를 죽이는 것, 친구가 선물을 사 주겠다고 해도 일단 사양하는 것, 남의 집에 묵는 일을 그 집 부모님께 폐가 될까 망설이는 것이 모두 끄렝짜이다. 제안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면 염치없어 보인다는 감각이 그 밑에 깔려 있다. 그래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마이똥 끄렝짜이(ไม่ต้องเกรงใจ)", 곧 "어려워하지 말라"고 먼저 말해 주는 일이 흔하다.
이 마음의 뿌리에는 관계의 평온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태국 사람들의 정서가 있다. 갈등을 드러내 상대의 체면, 곧 나(หน้า)를 깎는 일은 큰 실례로 여겨진다. 웬만한 실수나 불편은 "마이뻰라이(ไม่เป็นไร)", 괜찮다는 한마디로 넘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끄렝짜이는 상대를 배려하는 품성이지, 소극적인 성격의 표시가 아니다.
다만 이 미덕이 지나치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태국어에는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키 끄렝짜이(ขี้เกรงใจ)'라는 표현이 따로 있다. 직장에서는 이런 모습이 보고 지연으로 나타난다. 상사의 지시에 이의를 달지 않고, 모르는 것을 묻지 않고, 문제가 생겨도 상사가 듣기 싫어할 말은 미루는 식이다. 연구자들은 태국 조직의 높은 권력 거리와 끄렝짜이가 맞물려 직원들이 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잘 내지 않고 지시를 기다리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태국에서 일하거나 생활하는 한국인이 알아 두면 좋은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네"를 곧 "동의합니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회의 자리에서 끄덕임은 "말씀은 들었습니다"에 가까울 수 있다. 중요한 지시는 회의가 끝난 뒤 일대일로 다시 확인하고, 직원이 직접 자기 말로 설명해 보게 하면 오해가 크게 줄어든다.
둘째, 질문과 반대 의견이 안전하다는 신호를 윗사람이 먼저 보내야 한다. "마이똥 끄렝짜이"라는 말을 실제로 건네고, 나쁜 소식을 일찍 가져온 직원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대로 여러 사람 앞에서 실수를 지적하면 그 신뢰는 한 번에 무너진다. 꾸짖을 일은 조용히, 칭찬할 일은 여럿 앞에서 하는 편이 낫다.
셋째, 거절은 돌려서 오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 보겠다", "조금 어렵겠다"는 말은 사실상 정중한 거절일 수 있다. 상대가 확답을 피한다면 재촉하기보다 상대가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 더 열어 주는 편이 관계에도 일에도 이롭다.
한국에도 눈치와 체면의 문화가 있으니 끄렝짜이가 아주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눈치가 분위기를 읽는 기술에 가깝다면, 끄렝짜이는 상대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에 더 가깝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태국 사람들의 망설임과 사양이 답답함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존중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태국에서 신뢰를 얻는 길은 그 조심스러움을 탓하는 데 있지 않고, 상대가 끄렝짜이를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느낄 만큼 시간을 들여 관계를 쌓는 데 있다.
참고 자료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