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31 NEWS·

태국 전문가 칼럼 · 사회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들: 태국의 '세대를 건너뛴 가족'

태국 아동 네 명 중 한 명은 부모와 떨어져 산다. 그 뒤에 있는 이주와 은혜의 정서를 읽는다.

M31 NEWS · OPINION · Thailand, Business, Industry
M31 NEWS 오피니언 · 자체 제작 AI 일러스트

방콕의 금요일 저녁, 북동부행 버스 터미널은 늘 붐빈다. 커다란 가방을 든 젊은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향하고, 그 가방에는 고향에 두고 온 아이에게 줄 옷과 과자가 담겨 있곤 하다.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은 배우자가 아니라 아이를 키워 주는 어머니, 곧 아이의 할머니인 경우가 많다. 태국 사회를 이해하려면 이 장면을 먼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태국에는 조부모가 손주를 키우는 가정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있다. 세대를 건너뛴 가족이라는 뜻의 크롭크루어 캄룬(ครอบครัวข้ามรุ่น)이다. 2019년 태국 통계청이 유니세프와 함께 실시한 전국 아동 조사(MICS 6)에 따르면 0~17세 아동의 약 24%, 거의 네 명 중 한 명이 친부모 누구와도 함께 살지 않았다. 북동부 이산(อีสาน) 지역에서는 그 비율이 35~36%로 세 명 중 한 명을 넘는다. 주된 이유는 사별이나 이혼이 아니라 국내 이주, 즉 부모가 일자리를 찾아 방콕과 동부 공업지대로 떠난 데 있다. 같은 계열의 조사에서 이 비율은 2005년 18%, 2012년 21%로 꾸준히 늘어 왔다.

숫자만 보면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태국 사람들 스스로는 이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부모는 도시에서 돈을 벌어 송금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아이를 돌본다. 각자 맡은 몫을 해내며 가족이라는 하나의 경제 단위를 지탱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를 떠받치는 정서가 분쿤(บุญคุณ)과 까딴유(กตัญญู)다. 분쿤은 나를 길러 준 은혜, 까딴유는 그 은혜를 알고 갚으려는 마음을 뜻한다. 태국에서 부모에게 돈을 보내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자식 된 도리로 여겨지며, 아이를 맡기는 것 역시 부모에게 기댄다기보다 온 가족이 함께 짐을 나누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그늘도 있다. 유니세프와 마히돌대학 연구진은 부모와 떨어져 자란 아이들이 언어 발달이 늦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을 위험이 더 크다고 보고해 왔다. 손주를 키우는 조부모의 부담과 노후 문제도 태국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거론된다. 그래서 태국 안에서도 이 현상은 자랑도 비난도 아닌, 도시와 지방의 소득 격차가 만들어 낸 현실로 담담하게 이야기되는 편이다.

한국인이 태국에서 일하거나 사업을 할 때 알아 두면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직원의 가족 사정을 개인 문제로만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직원 상당수가 고향에 아이와 부모를 두고 있고, 아이가 아프거나 조부모가 병원에 가야 할 때 급히 휴가를 요청하는 일이 생긴다. 이를 근태 문제로만 다루기보다 미리 대체 인력과 휴가 규칙을 정해 두면 서로 마음이 편하다.

둘째, 송끄란(สงกรานต์) 같은 긴 연휴는 많은 직원에게 일 년 중 아이를 오래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연휴 전후 일정은 생산과 납기 계획에 일찍 반영하고, 귀향 일정을 존중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이직을 줄이는 길이다.

셋째, 급여일과 가불 요청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자. 월급의 일부는 곧바로 고향으로 송금된다. 급여가 하루만 늦어도 한 가족의 생활이 흔들릴 수 있다. 지급일을 정확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회사에 대한 신뢰가 크게 쌓인다. 대화 중 가족 이야기를 꺼낼 때도 아이를 왜 직접 키우지 않느냐는 식의 평가는 삼가는 것이 예의다.

다시 금요일 밤의 터미널을 떠올려 본다. 버스에 오르는 젊은이들의 가방은 무겁지만, 그 무게는 떠나온 가족과 이어져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태국의 가족은 한집에 살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로 움직인다. 그 연결을 이해하는 순간, 태국 동료들이 보여 주는 책임감과 고단함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일 것이다.

참고 자료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입니다

← 오피니언 전체 목록

이 콘텐츠 공유하기

FacebookThreadsLINEX이미지 저장

오피니언 목록

전체 보기 →